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버트 패리시 (문단 편집) === 기나긴 현역 시절 === 1976년에 1라운드 8번으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입단했지만, 팀의 부진으로 제대로 활약을 못 함에 따라 농구에 흥미를 잃었고, 결국 방탕한 생활에 빠짐과 동시에 세간의 악소문으로 인해 은퇴를 결심하다가 1980년에 보스턴 셀틱스로 입단, 그의 방황은 여기서 끝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 패리시는 골든스테이트에서의 부상 병력 때문에 별로 오래 뛰지 못할 거라고 평가받은 바가 있다. 이로 인해 1980년 드래프트 당시 워리어스가 갖고 있던 3번픽+패리시 ↔ 보스턴 셀틱스가 갖고 있던 1번픽 트레이드가 이뤄진 적이 있다. 패리시 입장에서는 덤 취급을 받은 셈. 그런데 정작 오래 못 뛸 거라던 패리시는 역사상 어떤 선수보다도 오래 뛰며 명예의 전당까지 올랐다. 참고로 이때 1번픽으로 뽑힌 선수는 올스타에 딱 한번 뽑힌 조 베리 캐롤, 3번픽으로 뽑힌 선수는 역대 최고의 파워포워드 중 하나인 [[케빈 맥헤일]]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골든스테이트는 올스타 1회짜리 평범한 선수를 받고 명예의 전당급 선수를 두 명이나 넘긴 천하의 뻘짓을 한 셈이다. 보스턴에서 당대 최고의 스타인 [[래리 버드]], [[케빈 맥헤일]]과 '빅 3'를 이루어 1981. 84, 86년 3번에 걸쳐 우승시키고 1985년, 87년 2번 준우승 시킴으로써 스타로 떠오르게 되었다. 게다가 1991년에 '''38세'''의 나이로 8번째 NBA 올스타에 오르는 등 기량은 대단했다. 셀틱스가 악화 일로를 걷게 된 1994년에는 [[알론조 모닝]]과 같은 후배 빅맨들의 지도를 위해 샬럿 호네츠로 이적하여 2년간 뛰다가 1996년에 시카고 불스에서 1시즌을 뛰고 1997년, '''43세'''의 나이로 은퇴하게 되었다. 굉장히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해왔는데, 커리어 초창기에 '''[[존 하블리첵]] '''과 같은 코트에서 뛰었고, 말년엔 [[코비 브라이언트]]를 상대하며 뛰었다. 참고로 존 하블리첵은 62-63년에 데뷔한 선수로 '''[[빌 러셀]]''' 시절에 조력자로 뛰며 6번 우승, 러셀이 은퇴하고 나자 에이스로[* 사실 러셀 시절에도 후반 2연패 당시엔 에이스에 준하는 위치였다.] 2번의 우승을 더 이끈 뒤에 은퇴한 선수다. 패리시와는 두 시즌이 겹치는데(76~77, 77~78) 마지막 시즌까지 무려 전경기, 34.1분 출장에 16.1점을 기록한 선수. 패리시도 이 시즌에 전경기 출장을 했다. [[필 잭슨]]의 경우 패리시의 골든 스테이트 마지막 시즌이었던 4년차, 79~80시즌까지 뛰고 은퇴했는데, 위에 나오지만 패리시가 불스에서 뛸 당시 감독과 선수로 재회했다. 코비와는 그의 루키 시즌이던 96-97시즌 레이커스와 불스의 맞대결 2경기에서 같이 뛰었다. 여담이지만 패리시가 같은 코트에서 뛰었던 코비와 하블리첵의 나이 차이는 무려 38세로, 아버지뻘이 넘는다. 물론 코비의 실제 아버지였던 조 브라이언트도 패리시와 현역시절이 겹치는데, 놀라운 것은 조보다 패리시가 한 살 많다! 즉, 패리시는 실제 아들뻘 선수들이 NBA에 입성할때까지 뛴 것.[* 비슷한 예로 커리어 초창기에 [[카림 압둘자바]], [[줄리어스 어빙]]이 현역으로 있었을 때 데뷔해서 [[라존 론도]]같은 선수들이 데뷔하던 06-07시즌까지 뛴 케빈 윌리스의 케이스도 있다.윌리스 역시 은퇴할 당시 만 43세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